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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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의 야구 종목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 되었으나 대만 대한민국 일본 중국 4개국만 참여한 대회였기에 이 대회가 실질적으로 아시안 게임에서 제대로 진행되는 야구 대회였다.
특징으로는 프로선수들의 참가가 아닌 아마추어 선수들만 허용이되었고 아마야구 답게 알루미늄 배트를 먼저 선보였음으로 시작이 되었다.
현재는 사라진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홈구장인 히로시마 시민 구장 구레시니코야 야구장 히로시마 코카콜라 야구장 3개의 구장에서 경기가 펼쳐졌고, 대회 방식은 대회 참가 6개국끼리 A/B 두 조로 나누어 예선을 치르는 경기였다.
A조는 일본/중국/태국, B조는 한국/대만/몽골
B조
5위 결정전
준결승
한국과 일본은 각각 조 1위 및 콜드게임으로 올라왔다. 허나 서로가 붙는 아마추어 대회에서는 1990년 이후 가장 오랜만에 치르는 공식전이었다.
그만큼 일본 내에서는 관심이 많았으나 국내에서는 관심이 적었다. 오히려 축구와 마라톤이 눈에 띄게 많이 알려졌다.
한국은 선발 문동환이 중반까지 호투하며 일본타선을 막아냈지만 구원투수로 등판한 조성민의 난조로 아쉽게 패배한다.
경기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은 4회초에 먼저 2점을 내준 뒤 5회 2사 1·2루서 안희봉이 3점홈런을 터뜨려 3-2로 전세를 뒤집는 데 성공했지만, 7회 무사 1루서 상대의 희생번트를 어설프게 처리하다 안타를 만들어주면서 2사 2·3루의 위기를 맞았다. 여기서 대타 다이세이 다카기의 투수 키를 넘는 빗맞은 타구를 2루수와 유격수가 서로 미루다 2점을 내줘 4-3으로 재역전 당했다. 그렇게 9회에 일본은 추가 2득점을 하였고 홈팀 공격 한국은 추격전을 했으나 결국 주저 앉고 1점차로 패배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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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의 야구 종목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 되었으나 대만 대한민국 일본 중국 4개국만 참여한 대회였기에 이 대회가 실질적으로 아시안 게임에서 제대로 진행되는 야구 대회였다.
특징으로는 프로선수들의 참가가 아닌 아마추어 선수들만 허용이되었고 아마야구 답게 알루미늄 배트를 먼저 선보였음으로 시작이 되었다.
현재는 사라진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홈구장인 히로시마 시민 구장 구레시니코야 야구장 히로시마 코카콜라 야구장 3개의 구장에서 경기가 펼쳐졌고, 대회 방식은 대회 참가 6개국끼리 A/B 두 조로 나누어 예선을 치르는 경기였다.
A조는 일본/중국/태국, B조는 한국/대만/몽골
2. 참가 선수[편집]
3. 예선과 본선[편집]
예선
A조B조
5위 결정전
준결승
동메달 결정전
4. 결승전[편집]
한국과 일본은 각각 조 1위 및 콜드게임으로 올라왔다. 허나 서로가 붙는 아마추어 대회에서는 1990년 이후 가장 오랜만에 치르는 공식전이었다.
그만큼 일본 내에서는 관심이 많았으나 국내에서는 관심이 적었다. 오히려 축구와 마라톤이 눈에 띄게 많이 알려졌다.
한국은 선발 문동환이 중반까지 호투하며 일본타선을 막아냈지만 구원투수로 등판한 조성민의 난조로 아쉽게 패배한다.
경기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은 4회초에 먼저 2점을 내준 뒤 5회 2사 1·2루서 안희봉이 3점홈런을 터뜨려 3-2로 전세를 뒤집는 데 성공했지만, 7회 무사 1루서 상대의 희생번트를 어설프게 처리하다 안타를 만들어주면서 2사 2·3루의 위기를 맞았다. 여기서 대타 다이세이 다카기의 투수 키를 넘는 빗맞은 타구를 2루수와 유격수가 서로 미루다 2점을 내줘 4-3으로 재역전 당했다. 그렇게 9회에 일본은 추가 2득점을 하였고 홈팀 공격 한국은 추격전을 했으나 결국 주저 앉고 1점차로 패배 하였다.
5. 여담[편집]
- 일본과 한국은 이 대회에서 20득점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물론 상대팀이 야구라는 개념도 모르는 태국과 몽골이었다.
- 엔트리에 있던 권오영은 당시, 상무 소속이었고, 나머지는 미필 대학생들이었다.
- 박재홍, 이병규는 이 대회를 시작으로 무려 4연속으로 아시안 게임을 나갔으나, 하필 마지막이 좋지 않게 끝나서 좀 찝찝했다.
- 공식적으로 채택 된 아시안 게임 첫 은메달을 걸고 귀국한 선수들은 이 후 프로에 데뷔를 하게 된다. 권오영은 프로에 두각을 내지 못했지만,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많은 제자들을 양성한다.
- 대표팀 맡았던 김충남 감독은 애틀랜타 올림픽에 사령탑을 맡지만, 예선 광탈을 하여 지휘봉을 내려 놓는다.
- 문동환을 구원한 조성민은 패전 투수가 된다.
- 한국과 일본이 다음 대회 역시 결승전에서 만났지만, 한국이 프로+아마추어 최상의 조합으로 첫 금메달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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